2016년 5월 28일 토요일

어린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어린 왕자’가 새로운 번역과 새로운 그림으로 다시 태어났다. 새 어린 왕자에서는 기존 번역에서 보이는 오역, 부적절한 호칭, 비논리적 문장 등을 바로 잡았다. 그림은 생텍쥐페리의 원화를 깨끗한 컬러와 선으로 화가가 다시 재현해 마치 어린 왕자의 별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작가와 작품 세계, 구성과 줄거리, 생각해 볼 문제 등 입체적인 해설을 시도, ‘어린 왕자’의 모든 것을 다각도로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 새 어린 왕자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말처럼 술술 읽히는 영문’이다. 어려운 단어나 표현 바로 옆에 한글 주석을 달아 원문을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는 영어 독해 능력을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는 장치라고 자부한다. 영문은 영한 대역이 아니라 별도로 편집해 자연스러운 독서를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어린 왕자’는 성경과 마르크스의 자본론 다음으로 많이 번역되고 읽힌 책이다. 프랑스의 일간지 ‘르 피가로’는 최근 ‘어린 왕자’가 160개 언어로 번역됐고 프랑스에서만 1,100만 권이, 세계적으로 8,000만 권이 판매됐다’고 보도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어린 왕자’에 빠진 것은 이 동화가 생텍쥐페리 자신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은 아닐까.생각해 볼 문제 ▲ ‘어린 왕자’를 작가 생텍쥐페리의 또 다른 모습으로 본다면 어디에서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이런 관점에서 어린 왕자가 버렸던 ‘장미꽃’을 작가의 개인 생활이나 역사적 상황과 연결해 그 의미를 해석해보자. ……어린 왕자는 생텍쥐페리의 자서전이나 다름없다. 그는 동심을 잃고 어른이 된 비행사일 뿐 아니라 무엇이든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순수한 어린 왕자이기도 하다. 그의 문학 세계가 독창적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글에 자신의 삶을 투영시켰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가 비행사였기 때문에 어린 왕자도 별들 사이를 오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님’은 님이면서도 동시에 조국이 될 수 있듯이 어린 왕자가 버렸던 장미꽃은 작가의 부인을 뜻할 수도 있고 생텍쥐페리가 미국으로 망명한 뒤의 조국 프랑스를 뜻할 수도 있다. 어린 왕자가 장미꽃을 그리워하는 것은 생텍쥐페리가 위기 상황에 처한 조국을 그리워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는 여덟 살 연하의 엘살바도르 출신인 콘수엘로 순신과 결혼했다. “당장 키스해주지 않으면 비행기를 추락시키겠다”는 협박에 가까운 열정적인 청혼으로 그는 결혼에 성공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아 서로 마찰을 빚었다. 비록 7년간의 결혼 기간 중 5년간 별거 생활을 했지만 이혼은 하지 않았다. 생텍쥐페리는 자신이 죽기 전에 그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게는 당신의 편지가 일용할 양식이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태양이 존재하는 것처럼 확실하다는 것을 믿어줬으며 좋겠소.”라고 썼다. 이로 미루어볼 때 콘수엘로 순신은 어린 왕자(생텍쥐페리)가 버렸던 ‘장미꽃’으로 비유해 볼 수 있다. 작은 별에서 장미 한 송이와 단둘이 살던 어린 왕자는 장미가 까다롭게 구는 바람에 장미 곁을 떠나 혼자 우주 여행길에 나선다. ▲ 어린 왕자는 자신이 버린 그 장미야말로 책임져야 할 존재란 사실을 깨달은 후 몸은 사막에 버려둔 채 영혼만 다시 자신이 살던 작은 별로 돌아간다. 생텍쥐페리는 미국에서 우울한 망명 시절을 보내며 ‘어린 왕자’를 탈고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참전을 결정하자 비행사였던 그는 자원입대했다. 이는 마치 버려두고 떠났던 ‘장미꽃’을 지키기 위해 다시 돌아가려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13쪽 ▲ 이 이야기 속에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은 소혹성과 지구에 사는 사람들, 조종사, 어린 왕자이다. 이들은 각각 무엇을 상징하나. ……조종사는 우정을 제외하고는 무엇인가를 소유하기를 포기한 인간이다. 행동과 소유의 공허함을 인식하고 있는 조종사는 어린 왕자의 내면을 향해 천천히 나아간다. 어린 왕자는 의식을 배우고, 길들여지는 것을 배우고, 우정을 배우고 난 후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다. 인간들, 조종사, 어린 왕자는 각각 육체, 지성, 영혼을 상징한다. 평범한 인간, 동경하는 자, 깨달은 자를 상징한다. 또한 눈 먼 자, 추종자,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 자를 상징한다. 풀무질하는 자, 끊임없이 실험하는 연금술사, 불멸의 화금석(化金石)을 발견한 연금술사를 상징한다. 종교적 관점으로는 이단적인 무신앙자, 신자, 성인을 상징한다. ―17쪽 Once when I was six years old I saw a magnificent(굉장한) picture in a book, called True Stories from Nature, about the primeval forest(원시림). It was a picture of a boa constrictor(보아 구렁이) in the act of(~하고 있는) swallowing(삼키다) an animal. Here is a copy of the drawing. In the book it said: “Boa constrictors swallow their prey(먹이) whole(통째로), without chewing it. After that they are not able to move, and they sleep through the six months that they need for digestion(소화).” I pondered(곰곰이 생각하다) deeply, then, over the adventures(모험) of the jungle. And after some work with a colored pencil I succeeded in making my first drawing. My Drawing Number One. It looked like this: I showed my masterpiece(걸작품) to the grown-ups(어른), and asked them whether the drawing frightened(두려워하게 하다) them. But they answered: “Frighten? Why should any one be frightened by a hat?” My drawing was not a picture of a hat. It was a picture of a boa constrictor digesting an elephant. But since the grown-ups were not able to understand it, I made another drawing: I drew the inside(안쪽) of the boa constrictor, so that the grown-ups could(~할 수 있도록) see inside it clearly. They always need to have things explained. My Drawing Number Two looked like this: ―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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